Luscious.K
#자양동 #안주나라 #3000리뷰
"이 처럼 호사스러운 삼합은 없다"
음식점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 2016년이니 8년 동안 3000 개의 리뷰를 작성하게 됐네요. 1년에 약 375 개 정도의 리뷰를 작성한 샘인데, 그 동안 참 많은 추억을 쌓았다 싶어요.
문론 나의 기록이 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기억들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었지요.
최근 이런 기록들이 사라지고 끊어질 위기를 도와주신 뽈레에게도 감사를 드리면서 3000번째 리뷰를 적어봅니다.
#삼합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싸먹고 올려먹고 비벼먹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같이 먹는 문화가 발달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음식을 상징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본인은 채소를 상추에 싸서 먹고 삼겹살과 김치는 흰밥 위에 올려 먹기까지 할까!
이런 같이 먹는 혼합의 문화는 삼합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는데, 비공식적인 썰에 의하면 최초의 삼합은 홍어+돼지고기+묵은지의 삼합이고 이는 귀한 돼지고기를 아껴 먹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지금이야 축산업의 발달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사실도 재밌지만 이제는 완전히 역전된 홍어의 귀함 때문에 홍어삼합은 비싼 음식으로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홍어는 아무리 삼합으로 먹어도 호불호가 상당히 심한 음식이다.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도 못맡지만 좋아하는 분들은 삼합으로 먹지 않고 소금만 찍어 먹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온도를 가하면 더 강해지는 암모니아의 특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홍어탕, 홍어애탕 같은 더욱 강력한 음식을 찾기도 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종로 #홍어랑민어랑 의 지옥의 #홍어라면 을 추천합니다)
#명쉐프
나에게 있어 훌륭한 요리사는 못먹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요리사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조리한다거나 어른의 음식을 아이들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명쉐프의 자격이 있다.
이런 나의 기준이라면 명쉐프는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도 홍어삼합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일 수가 있다.
35년 째 자양동에서 홍어를 말아내시는 안주나라의 어머님도 나에게 있어서는 명쉐프이고 이런 명쉐프의 음식은 나의 3천번째 리뷰의 자격이 충분하다.
#정성
그리 강하지 않은 홍어지만 자기도 홍어라고 꽤나 꼬릿한 향을 뿜어낸다. 눈으로만 봐도 끝내주는 김치도 놓이고 미나리와 초장, 참기름도 곁들여진다.
특별할 것이 없는 삼합집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성이 들어가니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홍어삼합이 된다.
서글한 외모의 어머님이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손으로 김치를 쭉쭉 찢으며 초장 찍은 고기와 미나리를 올리고 홍어는 참기름을 듬뿍 찍어 김치로 일일히 말아낸다. 한 입에 먹으면 김치의 알싸함과 홍어의 향이 치고 들어오지만 곧 미나리의 향기와 함께 강력한 참기름의 고소함이 모든 것을 코딩한다.
이런 미친 맛이 있나?
이렇게 특별한 삼합을 홍어가 떨어질 때까지 다 싸주시고 일어나시며 하시는 말이...
"내가 35년을 싸고 있어!"
왜 이렇게 일일히 싸서 먹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홍어의 강한 맛을 중화시키는 여러 재료가 돋보이는 맛이지만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맛은 역시나 #정성의맛
#홍어애탕
술마시는 집에 국물이 없어서는 안되겠다.
홍어애탕이 있어 부탁을 드렸는데, 냄비 넘치게 귀한 홍어애를 잔뜩 넣고 끓여주신다.
단맛 없이 개운하면서 암모니아 뻥 터지는 국물이 시원한 중독성을 준다.
대량의 애는 푸아그라 못지 않은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준다. 아귀간이 맛있다고 한들 잘 삭힌 홍어의 애만큼 유혹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집의 대표 메뉴는 당연히 삼합이지만 숨은 명작은 바로 홍어애탕이니 절대 놓치지 말자.
참 좋은 집이다.
35년 째 김치를 말고있다는 어머님의 무심한 말씀이 이집의 초심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나 귀찮은 일이겠냐마는 맛을 위해, 또 이 가게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멈추지 않는 뚝심과 같다.
그 정성과 뚝심은 고스란히 맛으로 나타난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호사스러운 #홍어삼합 으로 말이다.
PS: 일반적인 홍어집에는 대부분이 남성 손님인데, 이집은 여성손님이 더 많다. 사장님은 명쉐프가 틀림없다.
PS2: 뽈레 와서 목표가 500 팔로워에 3000 리뷰였는데 다행히 같이 달성했네요. 이제 1000 팔로워에 5000 리뷰 도전! ㅎ
PS3: 어머님 사진은 허락 받고 촬영했습니다.
#러셔스의베스트술집
#러셔스의베스트씨푸드
#러셔스의베스트김치
#러셔스노포
우이리
홍어자체의 맛이야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묵은지에 참기름 바를 홍어, 미나리, 초장 찍은 수육, 마늘을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말아주신다. 호사도 이만한건 간만이다.
Tabe_chosun
안주나라
중국어 간판과 어딘가 이국적인 향신료로 가득 찬 거리를 걷다보면, 익숙한 한국의 냄새가 올라오는 곳이 있다. 화양리 중국인 거리 한복판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홍어집인 이곳이다.
직접 말아주는 홍어삼합으로 유명한 곳인데, 메뉴가 메뉴인지라 동행인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큼지막한 도마에서 홍어를 해체하고 계시는 여주인장님이 밝은 미소로 맞아주신다. 자리에 앉아 삼합을 시키면 가격 대비 꽤나 많은 양의 홍어 한접시가 등장한다.
##홍어삼합(70000)
홍어 매니아들은 홍어만 따로 소금 찍어 먹고 돼지고기는 배나 채운다고는 하지만, 이곳의 홍어삼합은 주인장님이 선택권 없이 직접 말아주시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 홍어의 맛을 따로 느끼고 싶다면 미리 접시에 조금 덜어 놓기를 추천한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주인장분이 의자 하나와 함께 합석하여 삼합을 직접 말아주신다. 미나리와 고추, 들기름에 찍은 홍어 하나, 초장에 찍은 홍어 하나, 그리고 돼지고기 한 점과 손으로 죽 찢은 김치 하나.
맛이 없을 리는 없다. 다만 마일드한 홍어인지라 잔뜩 들어있는 부재료와 초장의 향에 개성이 확 죽는데, 홍어 자체의 맛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면 주인장께 말씀드려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디폴트는 홍어가 거진 떨어질 때 까지 싸주시기 때문인지라.
#홍어
먹음직스런 핑크빛 비주얼인데, 삭힌 향이 강하지 않고 살과 뼈가 부드럽게 씹힌다. 삭은 맛보다는 홍어 본연의 달달한 맛이 잘 드러나는 느낌. 초보자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상술했듯 한 접시를 꽉 채울 정도로 양이 꽤나 많은데, 국내산은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을것 같아 여쭤보니 놀랍게도 칠레산이라고. 사실 서울 유수의 홍어집들보다는 살짝 밀리는 식감과 단맛이긴 했지만,
흔히 칠레 홍어에서 느껴지는 부담스럽게 억센 뼈나 별 맛이 없는 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크게 놀랐다. 온 세상 바다는 하나인데 삭히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주인분의 웃음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경외심은 덤.
#돼지고기
적당히 삶아 식감이 꽤나 아삭한 돼지고기. 다만 육즙이 꽉 차있다던지 부들부들한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사실 이 가격에서 좋은 국산 삼겹살을 쓸 수는 없을테니 뭐.
개인적으로 푹 삶은 수육보다는 적당히 삶은 수육을 선호하는지라 좋았다.
#김치
길다란 접시에 거의 반 포기 가량 될 듯한 엄청난 양의 김치를 가져다 주시는데, 꽤나 많은 양을 삼합 제조에 소모하시니 술안주하기 딱 좋을 정도로 적당량 남는다. 아주 곰삭지도, 그렇다고 덜 삭지도 않은 적절한 익힘의 김치인데, 맛도 어느 지역을 탁 집기 힘들 정도로 중간에 위치하는 무난한 맛. 젓갈맛이 튀는 라도도, 그렇다고 투박하게 짭쪼름한 쌍도도 아닌 맛. 특색이 있지는 않았지만 덕분인지 향이 세지 않고 달달한 홍어살과 잘 어울렸다. 시원하게 잘 익은 묵은지니 막걸리와의 궁합은 뭐.
#홍어애탕
마일드한 홍어와는 다르게 입천장 까지는 애탕은 매니아들도 만족시킬 만 하다. 어디선가 오래 굴러먹은 듯한 양은 다라이에 짠맛보단 감칠맛으로 가득한 된장 양념에 큼지막한 애 잔뜩, 그리고 젤라틴이 많은 홍어 자투리부위들. 부재료나 된장보다는 푹 삭힌 홍어의 맛이 전면을 차지하기에 향이 강렬하다. 특이하게 애 자체는 삭히지 않았는데, 덕분의 생선 내장의 크리미한 지방맛을 잘 느낄 수 있다. 홍어 부위들은 푹 익어 쫀득한 젤라틴과 연골의 식감이 매력적이다. 애 양이 엄청 많으니 3~4명 정도가 시켰을때 한계효용이 꽉 찰듯하다. 원래 애탕에 밥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둘이 가서인지 도저히 엄두가... 가격이 충분히 납득되는 맛과 양이었다.
초보자들도 먹기 좋고, 국내산이나 흑산도 홍어를 취급하는 집들보다 가격/양적인 부분에서 큰 메리트를 가지기에 홍어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매니아들은 홍어 자체로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애탕이 있으니 뭐. 삭힌 향 말고 달달한 살맛에 집중해 본다면 또 재미있지 않을까. 삭힘은 애탕이 잔뜩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앞에서 김치삼합으로 변하는 홍어들과, 아무래도 직접 싸주시는 것의 부담스러움은 호불호가 갈릴 요소이다. 사장님 성격과 입담은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으니 생홍어를 먹고 싶다면 용기내어 말씀드려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여럿 유명인 단골들의 썰도 풀어주시는데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P.S 막걸리는 지평 장수 둘뿐이다. 다음에는 느린마을을 업어가고 싶다.
재방문의사: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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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포
초복에 방문했습니다. 언제와도 맛있는 홍어 삼합이구요. 이날도 홍어 초심자와 방문했습니다. 김치에 미나리에 직접 짠 참기름까지 맛없을 수가 없는 조합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Colin B
당신이 홍어와 친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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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낯빛의 아저씨들이 점령하고 있는 식당에 일본인 모델과 실크셔츠를 입은 아티스트가 들어선다. 그리고 각자의 테이블에서 홍어삼합을 즐긴다. 여기는 그런 곳이다.
아재와 식객들, 셀럽들까지 사랑하는 이 곳. 그 이유는 단연코 이모님이다. 스시야의 이타마에처럼, 손님들 옆에 앉아 맨손으로 홍어삼합을 만들어 주신다. 묵은 김치를 쭉 찢은 뒤 참기름 찍은 삼겹살 수육 한점, 미나리줄기, 편마늘, 청양고추, 초고추장 찍은 삭힌 홍어를 그 위에 올리고 돌돌 말아 접시 위에 올려주신다. 달큰한 김치가 먼저 혀에 닿고 이어서 미나리와 마늘, 고추의 강한 향이 풍기면서 삭힌 홍어의 찡한 향이 홀로 날뛰지 않게 한다. 그래서 김치의 상쾌한 발효향, 돼지고기 수육의 담백한 맛, 홍어의 톡쏘는 느낌이 따로 또 같이 매력을 뽐낸다.
홍어를 못 먹어본 사람이나 못 먹는 사람이나 여기서는 참 잘 먹더라. 개인적으로, 나는 미식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를 “도전”이라 생각한다. 인생에 홍어를 먹은 기억 하나 쯤은 남겨보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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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instagram.com/colin_b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