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꼬리
여기는 아주아주 위험한 식당이다 왜냐면 하루치 여행의 기억을 전부 삭제시켜 버렸기 때문. 부석사... 봉황산... 그게 뭐죠?? 사실 영주 여행을 계획할 때 뽈레부터 체크해 점심식사 장소로 낙점했던 가게였는데 부모님 컨펌까지 일사천리로 받아서 예약하려고 보니 평일엔 오후 5시 오픈이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가ㅜㅜ 결국 5시로 예약을 잡고 점심 메뉴는 다시 골라야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먹길 잘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했던 가게라서, 포스트가 구구절절 길어질 예정임을 미리 밝히며...
방에 들어서자마자 벽 한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자개 장식(자개장에서 자개 장식 부분만 떼어 붙인 게 분명한 것이, 자세히 보면 경첩 부분이 비어있고 손잡이 위치에 구멍이 나 있다ㅋㅋ)에 잠시 압도되었다가, 얼른 정신 차리고 한우 갈비살을 주문했다. 첫 고기 주문은 반드시 인원수 이상으로 해야한다니 유의할 것. 빛깔 고운 갈비살을 센 불에 올리면 고소한 기름이 자르르 돌고,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린다🤤 부모님도 감탄을 연발하며 드시는데 아주 뿌듯. 밑반찬도 하나하나 다 맛있어서 젓가락질 할 때마다 행복해지는 좋은 가게였다. 특히 감자조림.. 대체 어떻게 조리하면 이렇게 쫀득쫀득해지는 걸까? 너무 신기해서 고기 먹는 와중에 나물도 아니고 감자를 계속 주워먹었음.
고기 중량을 철저하게 지키시는지 처음 주문한 3인분도 그리 적지는 않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2인분을 추가 주문했더니 이번엔 딱 보기에도 훨씬 고급스러운 부위의 고기가 반쯤 섞여나왔더랬다. 아마도 꽃갈비살이나 안창살 같은 걸 섞어주신 듯했는데, 아니 아무 말도 없이 더 비싼 부위를 섞어주는 식당이 어딨어요ㅠㅋㅋㅋ 진짜 희한한 가게다... 정성껏 구운 다음 소금 살짝, 와사비 살짝 얹어 먹어보니 허어- 소리가 절로 나오는 퀄리티였다. 갈비살을 이미 양껏 먹은 상태에서 만족감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니 놀라운 맛의 경지.
그렇게 고기를 다 먹어갈 때쯤엔 미리 주문했던 한우 청국장이 나왔는데 이게 또 굉장했다. 구수하니 맛있고, 양도 아주 넉넉하고, 한우 고기도 듬뿍 들었는데, 이게 2천원이라니 여기는 뭐 천국인가요? 쿰쿰한 향은 거의 없는 대중적인 스타일이지만 고깃집 후식 된장찌개 먹는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호사스러운 퀄리티인 것이다. 심지어 공기밥을 같이 주문했더니 무 생채랑 상추가 든 대접을 공기밥 수대로 갖다주셔서 비벼먹을 수 있었음. 첫 주문에서 인원수대로 주문 받는 이유가 뒤늦게 이해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집은 한우 청국장 팔다가 파산할 것이 분명해...
게다가 음식만 맛있는 게 아니라 섬세한 서비스도 돋보였다. 고기 먹을 때 맥주 한 병을 주문했더니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있는 걸 보신 건지 음료수도 두 캔 내주셔서 이것도 다 못 마시고 나왔고. 신나게 고기와 청국장을 다 먹고 나니 이번엔 따끈하게 우려낸 페퍼민트 차가 나왔다. 고기 기름을 싹 씻어주는 차에 행복해하는 것도 잠시, 시간차 공격으로 귤이 또 나오고. 한우다보니 가격이 아주 저렴할 순 없지만 질과 양을 고려하면 + 한우 청국장까지 생각하면 가성비도 참 좋은 집이었다. 영주사랑상품권 결제도 가능해서 더더욱 좋았음. 좌식 테이블인 것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실내 장식 정도가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으나, 다들 아시잖아요, 이런 실내 장식 쓰는 가게들 다 맛집인 거😉 영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가봐야 할 식당으로 추천!
+ 아래쪽 다른 분 후기에서 핸드벨 호출종을 보고 기대하면서 갔지만 (손님들끼리 단합해서 연주라도 하게 되면 어떡하지! 뭐 그런 기대를 한 건 아니고...) 안타깝게도 핸드벨은 오른쪽방에만 있다고ㅜㅜ 왼쪽방은 할리갈리 벨이었다. 누가 봐도 교체한 지 얼마 안 되어 반짝반짝 하던데, 요즘 많이 쓰는 디지털 무선호출벨이 아닌 아날로그 벨로 교체하신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안 궁금한 이유는 이미 이 가게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ㅋㅋㅋ 물론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순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