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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인헌시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래된 쇼핑상가 지하에 전설처럼 자리 잡은 순대국집 두 곳이 있다. 바로 호남식당과 장성식당이다. 외관부터 이미 노포 감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입구에 서 있는 순간, 마치 던전 입구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세멘 바닥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계단이 어색하게 놓여 있고, 중앙에만 계단이 있어서 양 옆은 거의 미끄럼틀처럼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여름철에는 특히 던전 입장 준비가 필요하다. 입구 주변에는 외부 냄새가 빠지지 않아 비린내가 진동하는데, 신기하게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 냄새가 깨끗이 사라진다. 결국 진짜 던전은 입구뿐이다.
지하로 내려서면 장성식당과 호남식당이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두 식당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순대국이나 머릿고기 수육, 홍어를 먹고 싶으면 장성식당으로 가고, 그 외 다른 안주나 식사를 원하면 호남식당으로 가는 것이 좋다. 테이블에 놓인 김치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양념을 듬뿍 입힌 전라도식 김치인데, 해산물 젓갈이 과하게 들어간 스타일은 아니고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특징이다. 묵은내가 도는 김치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외관만 보면 솔직히 위생이 걱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면, 아주머니들이 하루 종일 쓸고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세간이며 싱크대며 화구까지 번화가의 식당보다 훨씬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낡은 느낌을 제외하면 청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지금은 장성식당, 호남식당, 그리고 최근 생긴 맥주집까지 세 곳만 남아 있지만, 한때 이 지하에는 11개 정도 식당이 있었다고 한다. 사장님 말로는 나이가 들어 장사를 접거나, 돌아가신 분들, 힘에 부쳐 떠난 분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낮시간인데도 20대 커플 두 쌍이 테이블에 앉아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사장님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는 걸 보니 단골인 듯했다. 이런 모습에서 이곳이 단순한 노포가 아니라, 진짜 ‘세월을 견디는 가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순대국과 함께 머릿고기 수육을 시켜 막걸리 한 잔 하려 했지만, 머릿고기가 삶는 중이라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순대국만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사장님이 “곱창 넣어줄까?” 하고 물으시길래 넣어달라고 했더니, “수육 못 먹었으니 고기랑 곱창 많이 넣어줄게” 하시며 인심을 더 얹어주셨다.
이 집의 순대국은 이름만 순대국이다. 실제로 순대는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머릿고기와 돼지 부속 고기들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국물은 소주 한 잔 들이키고 떠먹으면 타격감이 확 느껴질 만큼 짭짤하고 진한 스타일이다. 곱창이 들어가면 첫 숟갈에서는 특유의 내장 풍미가 살짝 올라오지만, 두세 숟갈 뜨다 보면 곧 익숙해진다. 곱창이 부담스럽다면 미리 빼달라고 해도 된다.
고기의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다. 시장표 투박한 고기가 아니라, 백암순대 같은 느낌으로 부드럽게 잘 삶아진 고기다. 곱창도 부드럽고 촉촉한 스타일이라, 전라도식 곱창전골을 떠올리게 한다. 돈설, 즉 돼지 혀도 꽤 넉넉히 들어 있다. 고기나 곱창을 몇 입 먹어도 계속 나올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게다가 국물이 식으면 데워줄까, 국물을 더 줄까, 밥을 더 줄까 끊임없이 챙겨주신다. 옆 테이블의 커플에게는 술국을 데워주며 고기까지 추가로 더 얹어주셨다. 요즘 같은 고기값 비싼 시절에 이렇게 퍼주는 집은 정말 드물다.
입구의 비린내만 조금 참고 내려가면, 안에서는 세상 따뜻한 순대국 한 그릇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을 견디고 남은 진짜 노포의 감성과 인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