쁜지
햇빛 아래, 에소 한잔의 오후
중림장에서 설렁탕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뭔가 입가심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타이밍에 맞춰, 중림장 근처 꽤 한다는 에소바를 찾았습니다.
오픈 시간 맞춰 들어갔더니, 사장님이 분주하게 준비 중이시더군요. 주문하려는 찰나, “중림장 다녀오셨죠?” 하시며 웃으십니다. 이 동네의 흐름을 아시는 분이란 얘기겠죠.
에소 한 잔과 샤케라또 한 잔을 부탁드렸습니다. 샤케라또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시네요. 기다리는 동안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골목, 그리고 햇살. 서울에서 흔치 않은 이 조합이 꽤 귀하게 느껴집니다. 괜히 김영랑의 시 구절 하나 읊어보게 되는 그런 분위기죠.
공간은 길쭉하고, 대부분의 잘하는 에소바가 스탠딩 위주라면 이곳은 앉을 자리가 꽤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일 좋은 분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고, 인스타나 잡지 촬영하는 팀들도 자연스레 보입니다.
먼저 나온 에소는 아주 진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쫀득한 질감이 있습니다. 진한 국물 한 그릇 하고 난 뒤여서일까요, 묘하게 설렁탕과의 궁합이 좋습니다. 어려운 에소라기보다는, 질감이 있어서 쉬운 에소 같은 느낌.
곧이어 나온 샤케라또는 예상대로 산뜻합니다. 기본 에소에서 느껴지던 묵직함은 가볍게 덜어내고, 대신 거품을 잘 내줘서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산미보다는 질감과 마무리감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이 샤케라또는, 깔끔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특히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설렁탕의 진한 여운 위에 올라탄 쫀득한 에소와 산뜻한 샤케라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조합을 만날 수 있다니, 기분 좋은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