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창
함덕의 근고기 에메랄드 빛으로 유명한 함덕해수욕장. 낮에는 흰 모래사장으로 바다빛과 어우러진다. 금강산도 식후경. 함덕도 배고프면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정 부위의 돼지고기를 파는 방식이 아닌, 무게로 파는 근고기는 매우 제주스럽다. 600그람 가량 한 근. 4-5cm 되는 두꺼운 생고기를 불판에 올려 구워 먹기도 하지만, 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미리 초벌해 가져와 구워 주기도 한다. 초벌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릴마크가 선명한 초벌. 이 집에선 제주보리짚을 써 훈연 초벌한다. 은은한 짚불의 스모키 향을 입힌 돼지고기. 조니워커 블루 같은 돼지고기다. 운좋게 목살 덩이가 올랐다. 아무리 흑돼지 생고기인 제주 돼지고기도 웰던이면 퍽퍽하고 맛없다. 미디엄과 미디엄래어의 중간. 주사위 모양의 고기 가운데가 선홍빛을 유지한 채, 육즙을 가두었을 때가 최고다. 고기만 먹어도 간이 되어있지만 제주 흑돼지의 영원한 친구는 소금과 멸치가 같이 녹은 곰삭은 멜젓이다. 감칠맛 폭발하는 아미노산 덩어리. 톡터지는 흑돼지 지방, 씹으면 치아사이로 꾸욱 흘러 나오는 고기의 육즙, 그리고 청양고추맛이 우러난 구수하고 꼬릿한 멜젓이 입 안에서 험께 그라인드 되어 뒤섞이면, 그 때서야 비로소 함덕의 와사비색에 가까운 에메랄드 바다가 입으로, 눈으로 들어 오게 되는 것이다. 한라산과 함께. 자리젓을 청하지 못 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깨 위 등심덧살인 가브리살. 이건 초벌 없이 길쭉이로 잘라 불판에 올렸다. 고기의 색이 신선하게 아름답다. 이것도 촉촉하게 굽는 게 생명. 잘 구워 준다. 타이밍 놓지지 말고 바로 먹어야 한다. 한라산21이 정신을 혼미케 하더라도. 횡격막근육인 갈매기살은 얇게 아삭거린다. 나름의 육향. 이건 육즙 나오게 굽기 어렵다. 원래 얇은 고기라. 근고기, 가브리살, 갈매기살 모두 대략 백그람에 만원인 셈이다. 식사로 맛본 김치말이국수나 해물된장찌개. 둘이 하나 시켜 나누거나, 셋이 둘 시켜 나눠도 충분하다. 함덕에 숙소가 있다면 걸어가 즐기기 좋은 식당. ps. 바다 사진은 함덕 숙소에서의 것. 식당에서의 뷰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