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
가지런한 배추김치와 흥건한 깍두기가 먼저 나왔다. 그 맛을 기억한 입 속에서 군침이 돌았다. 숟가락을 참지 못하고 흰 밥 한 술에 김치를 얹어 삼켰다. 새큼한 김치 첫맛이 이지러지고 매운 맛만 곱게 남았다.
벌건 국물에 잠긴 하얀 두부 위로 빨간 고춧가루가 그득했다. 파릇한 쪽파 사이로 다진 마늘 냄새가 진했다. 그릇 바닥까지 온통 희고 여린 두부로 가득했다. 국물이 끓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두부를 덥석 덜어 담았다. 부드럽고 연한 두부가 입에서 금세 사라졌다. 남겨진 맛이 희미하게 고소하고 길게 나지막했다.
빈 밥그릇에 두부를 마저 덜었다.
드르륵, 드르륵, 손님들 문 여닫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비교적온순
첫입보다 다섯입째가 더 맛있다, 장모님 댁.
n번째 방문입니다. ‘장모님’이신 할머니는 여전히 잘 계시고, 사위로 예상되는 사장님은 여전히 해맑게 썰렁한 개그(2만원이 나오면 “2천만원이요~”라고 하시는 등의)를 시전하십니다.
할머니 주머니 속 과자 하나만 달라고 해 보고 싶었어요. 엄빠와 온 아이를 보시면 도라에몽처럼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주시던 것이 생각나서요. 애들한테만 주시는 건가…
선배와 캠핑을 갔다가 아침밥을 위해 방문했는데, 한 술 뜨고 갸웃하던 선배가 어느 순간부터 말도 안 하고 숟가락질을 하십니다. 식당을 나온 후 “괜찮았어요?”라고 여쭤보니, “어어. 그거 특이하대? 한입 먹고 맛집 맞나 싶은데, 계속 땡기네?”라시네요. 흐흐.
예전 리뷰에도 잠시 썼던 것 같은데, 된장 베이스의 우거지 해장국과 순댓국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맛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입맛을 확 돋우는 맛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나만 맛있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주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찾아와 드시는 걸 보면, 그리고 딱 5일 정도 지나서 생각나는 순댓국인 걸 보면, 또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도 맛집이라고 하는 걸 보면, 맛집이 맞긴 한 것 같습니다.
가평 가실 일 있으면 한 번 가 봐 주세요. 저만의 맛집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아닌가… 나만의 맛집이 더 좋은 건가…)
비교적온순
해장국과 순댓국 사이의 절묘한 그 어딘가, 장모님댁.
간만에 맛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종로 청진옥의 해장국처럼 깔끔하면서도 진진한 느낌의 육수에, 실한 야채순대와 오소리감투, 내장부속으로 내용물을 채웠네요. 된장으로 투박하게 끓여낸 순댓국은 쉬지않고 숟가락질을 하게 만듭니다. 정갈한 김치도, 수북하게 썰어내주시는 파와 청양고추도 모두 순댓국의 맛을 증폭시킵니다.
장모님댁에서 ‘장모님‘이실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뒷짐을 지신 채 무심하게 “혼자야? 앉아. 순댓국?” 툭툭 던지시는데, 이게 이 집의 매력을 배가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엄빠와 함께 온 서너살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주머니 속 쿠키를 꺼내 주시며 “밥 다 먹고 먹어”라고 하셨는데... 그 쿠키, 저도 받고 싶었습니다.
단율
장모님댁_순대국부문 맛집(3)
최근방문_’23년 11월
1. 캠핑을 하며 불멍하고, 멍떼리며 가볍게 곁들일 술안주를 찾던 중, “백반기행”에 나온 순대국집이 있다고 하여 포장을 해왔다.
2. 특별히 순대국이 유명한 동네가 아니고 닭갈비, 막국수라는 유명한 음식이 있는 동네에서 관광객에게 이름을 알린 순대국집이라 확실한 기대치는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만족스러웠다.
3. 순대국으로 포장하여 냄비에 끓여서 먹었다.
- 순대국 (10,-)
: 한입 먹은 순간 이걸 순대국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생각이 가장 컸다. 돼지 부속은 꽤 많이 들어갔지만, 육수의 기본 베이스가 돼지 부속보단 된장에 조금더 치중되어있는 느낌이다. 덕분에 꽤 라이트한 순대국인데, 된장베이스가 강력하다보니 돼지부속이 잔뜩 들어갔음에도 잡내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감칠맛이 대단하다.
: 시레기된장국과 순대국 중간의 느낌인데, 그 밸런스가 많이 괜찮았고, 어느곳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4. 매장에서 한번 먹어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이 동네를 간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크다.
* 결론
묘하게 유니크한 순대국
백반기행
특별한 순댓국, 이름하야 막장 순댓국을 맛볼 수 있다는 집이다.
막장과 시래기를 넣은 비주얼이 얼핏 보기엔 된장국 같은데- 어디 맛을 보자, 순대의 고소함이 더해져 과연 독보적인 맛이다.
순대에도 시래기를 넣었다더니, 과연 구수한 장맛과 잘 말린 시래기가 훌륭하고 독특한 이 집만의 시너지를 낸다.
유행을 타지 않고 독특한 이 집 만의 맛을 간직하고 있으니, 질리지 않는 이 맛에 21년간 성업 중이라는 업력이 이해가 가는 한 그릇. 괄괄한 주인장이 내어주는 시골 인심이 속이 푸근하다.
66화 - 이제야 알았네~ 가평 풍미 밥상